슥 11:1-17 참 목자 되게 하소서
등록일 25-08-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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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이 시대, 우리는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전도하려 하면 거절당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려 하면 친구들에게 매도당합니다. 동성연애, 안락사 같은 민감한 주제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히고, 세상은 우리를 꽉 막힌 사람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세 내기 힘들고, 가족 중 누구 하나 아파서도 안 되는 팍팍한 현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깊은 고민이 찾아옵니다.
스가랴서는 우리 시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풍요로워 보이던 지도자들이 무너지고, 양들은 "잡혀 죽을 양 떼"가 되어 이리저리 팔려다닙니다.
목자들은 양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부요하게 되었으니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며 양들을 이용합니다. 물질주의에 빠진 이 시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성공과 부를 복의 증거로 포장하며 성도들의 영적 갈증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도, 은혜도, 축복도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 같습니다. 참된 목자가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로 양들을 이끌려 해도, 사람들은 즉석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만 원합니다.
참 목자의 품삯으로 은 삼십 개... 이는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팔리신 바로 그 값입니다. 토기장이에게나 어울리는 하찮은 값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의 복음을 평가했던 그 어리석음이 오늘 우리 안에는 없을까요?
편리함과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 시대, 우리도 모르게 복음의 가치를 세상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십자가의 고난보다는 현세의 축복을, 회개와 변화보다는 위로와 격려만을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결국 바른 목자를 원하는 것은 바른 목자를 갈망하는 바른 성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물질의 홍수 속에서도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는 우리들, 소비주의의 유혹 속에서도 참된 만족을 찾는 우리들, 그리고 복음을 은 삼십 개가 아닌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