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52 질풍노도 시기의 예수님
등록일 25-02-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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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성과와 경쟁이 우선이고, 학교에서는 세상의 가치가 기준이 되며, 사회에서는 성공과 인정이 목표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골 3:2).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도 성장 과정을 겪어야 하기에 청소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청소년은 끼인 시기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시기입니다. 인간으로의 청소년은 자아 정체성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부모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도 강해지기 때문에 부모와 충돌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청소년시기에 스스로 메시아임을 인식하면서도 부모의 손에 키워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끝난 후,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12살 예수님은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깊이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예수님을 찾아 헤매던 부모님은 마침내 성전에서 그를 발견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눅 2:48)
예수님의 대답은 이상하고 오묘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 2:49)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메시아인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이기 때문에 성전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요셉의 청소년기의 아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끼여 있는 모습 속에서 주님이 하신 것은 부모에게 순종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더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이뤄가십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이 말씀 속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세상을 떠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8)
세상은 때로 우리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갈등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부모님을 섬기셨던 것처럼, 우리는 가정과 일터, 학교와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지금 세상의 가치와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고 계신가요? 직장과 학교,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깊이 묵상해보세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