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1-32 하나님의 은혜, 공평한가?
등록일 25-03-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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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평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병상에서 죽기 전에 겨우 예수를 믿었다고 해 봅시다.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과 죽기 직전에 회개한 사람이 결국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 과연 공평한 일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를 봅시다.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한 둘째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집의 품꾼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멀리서 부터 알아보고 달려가 끌어안고 환영의 키스를 하고 기뻐하며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엽니다. 이를 본 맏아들은 분노합니다. 평생 아버지를 섬기며 성실히 살아왔지만, 자신에게는 작은 잔치조차 해준 적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때 아버지가 뭐라 말합니까?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복이 아니겠느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에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이 복된 이유는 아버지의 집을 함께 세워 간 것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언제나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으로 인해 고난도 받겠지만 그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7)
죽기 직전 회개한 사람일지라도 천국에 간다면 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허랑방탕했던 삶은 죽었던 삶입니다. 그의 인생 전체가 허망한 것을 쫓았던 삶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예수를 믿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요?